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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우 칼럼] 아베의 이유 있는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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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우
기사입력 2019-09-01

▲ 홍정우  ©경기 시민네트워크 말길

 아베가 잘 봤다. 일본이 따라 잡히고 있다. 중국은 손아귀에서 벗어 난지 오래다. 체급이 달라져 지금은 미국과 대거리 중이다. 한국은 경제 분야를 잠식해 들어오며, 때때로 정치적 기량도 일본을 능가한다. 내버려두면 한·중·일 가운데 일본이 3등 하게 생겼다. 이러다 북·미가 종전선언이라도 하는 날엔, 동북아 정세 주도권이 완전히 한반도로 넘어간다. 판을 흔들어야 한다. 지금이 아니면 늦을 수도 있다. 
 
 일본의 150년 생존 전략이 흔들리고 있다. 1868년 명치유신에 성공한 일본은 그 뒤로 일관된 국제정치 노선을 유지해 왔다. 세계의 패권과 손잡고, 아시아 맹주 노릇하는 것이다. 맹주에게는 특별한 이익이 있다.
 
 1902년에 당시 최고 패권인 영국과 조약을 맺고 우방이 되어 중국과 조선을 약속받았다. 1905년에는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미국으로부터 조선을 보장받는 보험도 들었다. 1차 대전이 나자, 우방들에게 물자를 납품하며 엄청난 부를 거머쥐고 제국의 기틀을 공고히 했다. 1940년에는 새로운 세계질서를 추구한다는 독일, 이탈리아와 3국 동맹을 맺고 대동아공영권-아시아 침략권을 보장받았다. 패전 직후, 불과 5년 만에 한국전쟁의 병참기지 노릇을 하며 얼마 전까지 교전국이던 미국의 은혜를 받았다. 미국은 아시아 공산화의 저지선으로 일본을 선택하고, 일본은 여전히 아시아의 중심국가가 남았다.

 좋은 시절은 금방 간다. 2010년 중국이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되었다. 일본이 1968년 독일을 뛰어 넘고 42년 간 지켜온 자리다. 한국의 도약은 더 뼈아프다. 반도체 시장에서 2013년 한국이 일본을 앞질렀다. 이즈음에 조선, 디스플레이, 정유 부분도 한국에 뒤쳐졌다. 수성을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한국을 밀어내지 못했다. 특히 반도체는 세계인이 주목하는 가운데, 돈 놓고 돈 먹는 치킨게임에서 패한 것이다. 자존심이 무너져 내린다. 중공업, 철강 등의 기간산업마저 한국의 추격에 시달리는 중이다. 한국인들이 머리 숙이며 기술을 배워 가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시장 논리만으로는 제압이 않되는 지경이 되었다.

 동북아에 새로운 질서와 서열이 형성되는 철이다. 150여 년 전의 각축이 재현되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일본이 낄 자리가 마땅치 않다. 근대화 초기, 1885년 후쿠가와 유키치가 일본의 탈아론(脫亞論)을 처음 주장할 때 한국과 중국을 나쁜 친구에 비유했다. 그 말은 예언이 되어 지금까지 사이가 좋았던 적이 없다. 이 두 나라가 나서서 일본을 아시아 상전으로 모실 일은 없다. 트럼프의 행보는 더 복잡하다. 어차피 키워줘도 일본의 힘으로 동북아를 정리할 수는 없으니, 미국이 직접 나서야한다. 트럼프는 환호와 박수를 아베와 나눌 생각이 없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군사 재무장까지는 눈감아 줄테니 미국의 용병이나 하라는 것이다. 아베의 무대는 아베가 만들어야한다.
 
 도발(挑發). 한국을 무릎 꿇게 만들고 동북아에 일본의 존재감을 다시 확인하고자하는 아베의 선택이다. 강제징용 관련 배상에 관한 한국 사법부의 2018년 판결을 핑계로 반도체 부품 소재를 못주겠단다. 또 남한이 북한에 몰래 팔아먹을까봐, 교역에 관한 백색국가에서 제외하겠다고 한다. 되지도 않는 소리다. 이 분쟁이 지속되면 한국과 일본 양국 경제에 큰 피해가 예상된다. 함선과 함선이 정면으로 부딪히는 모양새다. 누군가는 침몰할 수도 있다. 일본 참의원 선거, 한국 사법부 판결 등은 아베가 도발하는 것의 계기는 될 수 있겠으나, 원인은 아니다.
 
 내력을 보면 사람을 알게 된다. 아베는 조부와 외조부의 길 가운데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를 선택했다. 기시는 왜정 당시 만주국의 고위 관리, 일본 내각의 군수차관과 상공장관 등을 지냈다. A급 전범이다. 무슨 조화인지 전범인 기시는 52년부터 바로 정치를 재개하고, 현재의 자민당을 만들고, 일본이 재무장하도록 헌법을 개정해야한다고 일관되게 주장하며 총리까지 지냈다. 아베는 외조부의 영향 아래 유력 정치인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아베가 가장 존경한다는 인물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은 명치유신이 있기 전부터 조선과 중국 침략을 주장한 정한론(征韓論)의 원조이다. 쇼인 밑에서 이토 히로부미 같은 군국주의자들이 다수 배출되었다. 아베의 조부 역시 정치인이었으나, 군국주의를 비판한 평화주의자였으며 1946년에 일찍 세상을 떠났다. 아베가 태어나기 전이다. 
 
 유전(遺傳). 아베가 선택한 아시아 패권을 향한 도발은 개화기 이래 일본 주류 정치의 일관된 신념이자, 아베의 DNA다. 아시아 도발은 그들 군국주의자들의 역사적 유전이다. 근대 이후 한반도와 일본은 대등하게 평화로웠던 적이 없다. 한국이 한 수 아래에 있을 때만 협력 가능하다. 최근 우익 일본인들의 혐한은 서열이 뒤바뀔 수 있음에 대한 본능적인 반응이다. 죽기보다 싫은 거다. 그래서 도발을 지지한다. 전쟁이 다시 시작되었다. 이것이 본질이다. 중간에 유화국면이 온다 해서 끝났다고 착각해서는 안된다.
 
 침략 받는 백성들이 침략자를 대하는 태도는 두 가지다. 맞서 싸우거나, 맞서 싸우는 자를 비난하거나.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2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한다. 우리에게 뭔가 잘못이 있어서, 재들이 우리를 패는 거다. 그리고는 무엇을 잘못했는지 열심히 찾는다. 강자에게 붙어서 귀여움 받는 것이 그들이 아는 유일한 생존방식이다. 이 또한 하나의 삶의 방식이겠으나, 내 덩치가 커지면 어울리지 않는다. 아베가 행동을 개시하자, 한국에서 일군의 사람들이 정부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게 다 한국 정부 탓이라는 거다. 그런거 없다. 지들이 필요해서 패는 거다. 셋 중에 3등으로 밀리는 것을 용납할 수 없어 뭐라도 저지르는 거다. 지역 패권의 맛을 잊을 수 없는 거다.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은 지들이 필요할 때 거리낌 없이 아시아를 도발해왔다. 오래된 대물림이다. 
 
 아베는 미국과 손잡고 다시 동아시아 군사 패권이 되고자 한다. 중국이 세계 패권이 되기 전에 마무리 지어야한다. 한국이 더 커지면 뜻을 이룰 수 없다. 그러니 미리 제압해야한다. 아베의 이유 있는 선택에 대한 한국의 답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평화와 공존. 한국은 생존을 위해 이 원칙을 철저하게 지키게 될 것이고, 이로 인해 국제사회의 신뢰받는 리더가 될 것이다. 그 과정에는 중국과 일본이 가지지 못한 엄청난 자원이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깨어있는 시민과 종교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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